A Chairman Who Has No Regrets - Chapter 124
Only Krnovel
후회 안 하는 회장님 124화 –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절망(18)
경찰서 주차장.
나와 백 감독은 변호사를 한참이나 기다렸다. 서초동에 사무실이 있다더니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시절에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이라니, 제법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인걸까 아니면 단순한 운일까, 앞으로 떠오를 서초동에 벌써부터 자리를 잡아 놓다니 신기하다.
내가 아는 지금의 서초동은 그저 달농네가 아니었나 싶으니까, 의뢰인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흠흠.”
묵묵히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백 감독이 헛기침으로 내 시선을 돌린다.
“예, 감독님.”
“그, 아까는 연기였나요?”
“아- 쓸만한 그림 있어야 할 거 같아서요.”
백 감독이 왜인지 침을 꼴깍 삼킨다. 뭐가 긴장되는 걸까.
“하, 하하… 탈랜트 저리가라 했어요.”
“그랬나요?”
어깨를 으쓱였지만 아무렴.
적어도 아픈 척, 우는 척, 슬픈 척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이미지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비용을 투자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항상 카메라 앞에 서는 훈련을 해야만 했었다.
주가가 폭락해도 웃어야 했고, 주가가 폭등해도 울어야 했다.
내게 웃고, 우는 연기는 일상이었다. 고작 카메라에 잠시 잡히는 안타까운 얼굴쯤이야 얼마든지. 이 시절, 화질도 좋지 않은 카메라라면 더더욱.
“전강 학생이 원하는 게 완벽한 대비. 맞죠?”
백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울면서도 울린 사람들을 비호하는 어린 소년, 그런 소년에게 손가락질과 욕지기를 퍼붓는 어른들.
제법 극적인 대비가 이뤄졌을 것이고 여론은 이제 완전히 박정용에게서 눈을 돌릴 것이다.
정확히는 내게 손가락질하고 욕지기하던 그 행동이 고스란히 제 놈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가진 재산마저 나는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 그 재산 역시 제 놈의 능력이 아닌, 나의 벗이 슬픔으로 빚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수철아!”
저 멀리서 한 사내와 혜인 리 변호사가 빠르게 거리를 좁힌다.
“아, 선배!”
백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인다. 나도 그의 곁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후- 미안하다 좀 늦었지? 설마 벌써 진술 한 거야?”
변호사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점 하나, 획 하나로 계약서 때문에 웃고 우는 일은 비일비재 하다.
경찰서라고 다를까.
특히나 지금의 경찰서라면 없는 증거도 만들어내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놈들이 판을 친다. 그러니 더욱 말을 아껴야 한다.
“휴- 다행이다. 빨리 온다고 했는데 쯧, 그나저나 이쪽이 의뢰인?”
백 감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얼른 내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김&리 로펌의 대표 변호사 김호철입니다.”
누가 봐도 어린 나에게 그는 몹시 공손하다. 김미현씨와 김업중 건축가 이후로 또 처음이다. 내게 처음부터 공손한 사람은.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아닐 테고, 대한민국에 김씨 성 가진 사람들은 몹시 많으니까. 그냥 좋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몰리는 느낌이랄까.
“네, 처음뵙겠습니다. 전.강.입니다.”
“오- 이름이 멋지네요, 굳셀 강인가요?”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씨익 웃는다.
제법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아부나 아첨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칭찬까지, 꼭 미국의 유명 변호사들을 상대하는 것만 같다. 우리나라 변호사들과 다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미국은 변호사들이 스스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습관적으로 말한다. 그만큼 서비스 마인드를 탑재했다는 뜻이다.
이 사람도 그런 부류인가.
“또 뵈어요.”
혜인 리 변호사의 인사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경찰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갈까요?”
김호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오늘 경찰 조사는 여기 이 변보다 제가 조금더 나서겠습니다. 괜찮을까요?”
“왜죠?”
“아직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 굉장히 유창하시던데요?”
가끔 발음이 어눌한 게 있었지만 그래도 유창했다. 어휘의 선택에 어색함이 없을 만큼.
“아직 부족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혜인 리 변호사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 누가 한국어가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할까. 너무나도 한국인 같은데.
“예, 뭐. 그러시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니 개판이다.
이건 뭐 도떼기 시장도 아니고. 여기저기 머리에 띠를 두른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런저런 크고 작은 시위들이, 민주화를 위해 피를 토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가 실감 된다.
“억울합니다! 예? 우리 어머니 땅과 집인데 그게 어떻게 불법입니까!”
“아저씨가 데모했잖아? 어? 사람들 이끌고 선동하고 그거 아니야?”
“저 사람들 다 땅이랑 집 빼앗긴 사람들이라니까요?”
시위라면 치를 떠는 경찰들이어서인가. 정확히 시위라는 단어가 아니라 데모라는 단어에 꽂혀있는 듯 보인다.
내가 손가락으로 열변을 토하는 박정용을 가리키자 김호철이 눈치껏 그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에게 명함을 내민다.
“피해자 전강님의 변호인 김호철입니다.”
“예? 피해자요?”
나를 힐끗 바라본 경찰.
“저저! 네가 신고했지! 어? 네가 신고했어! 내가 이렇게 누명을 쓰고도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무고죄도 엄연히 형사처벌이야! 어!”
호돌이 마을에서 마지막 내 모습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움에 목 놓아 외치던 모습이어서일까, 놈이 오히려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내게 삿대질하고 있다.
“당신은 조용히 해!”
경찰이 버럭 소리를 지르니 자라처럼 어깨를 움츠리는 박정용.
혜인 리 변호사가 재빨리 김호철에게 어떤 서류를 건넨다.
“여기, 피해자 전강님의 고소, 고발장입니다.”
바로 서류를 확인하는 경찰.
“모욕, 명예훼손, 무고, 가택침입, 절도, 사기… 오우 이게 다 몇 개야.”
힐끗 변호사를 쳐다본 경찰이 이내 입맛을 다시며 서류를 갈무리한다.
“무, 무슨!”
잔뜩 당황한 박정용이 입을 열려고 하는 찰나.
“아, 합의는 없습니다.”
나는 못을 박았다.
경찰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피해자 조사 응해야 하나요?”
김호철의 질문에 경찰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몇몇 경찰을 불러서는 박정용과 그와 동조하던 호돌이 마을 사람들 몇을 유치장으로 보낸다.
“이름.”
“전강.”
“나이.”
“18세.”
피해자 조사는 형식적으로 끝났다. 이미 데모라 불리는 시위행위를 한 순간부터 경찰들의 적이나 다름없는 박정용 덕분이었다.
조사를 끝내고 유치장을 스쳐 가는데 불쑥 팔이 나와서는 내 손을 붙든다.
“이, 이봐! 학생!”
판자촌, 그러니까 호돌이 마을 사람의 손이었다.
“하, 한 번만 봐줘… 내가 눈이 훼까닥 해가지고… 응? 실수했어 내가… 실수.”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저번에 말이죠.”
“응? 저번에?”
“다시 계약할 때.”
“아아, 응.”
나는 팔을 뿌리쳤다.
내가 눈물을 보였다고 착각들을 하고있는 모양인데, 나는 호구가 아니다.
“두 번은 없다고 말했죠?”
“어? 어어?”
두 번이나 누군가를 용서할 만큼 성인군자도 아니었다. 기회는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이들은 이제 자격을 잃었다. 판자촌의 사람들에게 굳이 명의를 가져온 이유가 이것이다.
보통의 인간들은 눈앞에 이득에 눈이 멀어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실수로 포장하며 정신 승리한다.
“여기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오는 날 짐 빼세요, 이제 호돌이 마을에 당신들의 자리는 없습니다.”
“그, 그런!”
발전하고 성장할 상계동, 그리고 판자촌. 원래는 철거되고 재개발될 판자촌의 운명이 바뀌면 그들은 욕심을 버티지 못할 거라 나는 확신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방법이 내 이름으로 해 놓는 것이었다. 감히 나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판자촌, 상계동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판자촌과 상계동이 곧, 어머니의 소망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이건 사기야! 거긴 우리 집이었다고!”
“맞아! 우리가 계속 살고 있었어! 네놈이 억지로 빼앗아 간 거잖아!”
이제는 떼를 쓴다.
서자 할머니의 등 뒤에 칼을 꽂은 놈들이 잘도 그곳에서 기생을 하고 있었다. 그래, 말 그대로 기생충이나 다름이 없다. 숙주를 좀 먹는.
나는 품에서 미리 가져왔던 계약서를 꺼냈다.
“법대로 하죠.”
침을 꿀떡꿀떡 삼키는 사람들.
“저, 저놈 저거! 아까 그거 다 연기였어! 연기! 거기 경찰 양반! 이 놈 보라고 어? 이거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니까?”
박정용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겁을 집어먹었던 사람들이 다시 이를 드러낸다. 참 간사한 사람들이다.
그나저나 박정용.
아직은 절망이 가시거리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가벼운 조사 정도로 착각하고 있다면 오산인데.
“맞아! 이 사기꾼 같은 놈!”
“이번에도 우리를 속이려고!”
“거짓말이야! 죄다 거짓말!”
난 웃었다.
“당신들이 카메라에 한 얘기들은 다 진실인가?”
박정용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놈이 침을 꿀꺽 삼킨다.
그래, 캥기는 게 있겠지 놈은 습관처럼 거짓말을 뱉다가 이제는 뭐가 거짓말인지 모를 지경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
“뭐?”
“당신들이 당신들 입으로 그랬잖아, 감언이설로 속이고, 치매인 서자 할머니를 꿰어서 땅과 집을 빼앗았다고.”
“그, 그랬잖아!”
“글쎄, 내일 방송에서도 그럴까.”
더 뭐라 시끄럽게 떠드는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그대로 경찰서를 벗어났다.
“어휴, 양심도 없는 것들.”
옆에서 백 감독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오늘 그림 많이 나왔죠?”
내 물음에 백 감독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렇죠? 오늘 것도 얼른 가위질 해야죠.”
“내일 방송 기대하겠습니다.”
“걱정마요, 아주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할 테니.”
“아주- 좋네요.”
내가 바라는 게 그것이었다.
그들은 아예 얼굴도 들지 못할 정도로 더 이상 대한민국 땅에 발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TV보급이 어려운 저기 어디 시골이나 섬으로 가지 않는 이상 적어도 서울땅에서는 살기 힘들게 만드는 것.
“마을 사람들 보다. 박정용에게 포커스 맞춰주세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백 감독이 자신 있게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호철과 혜인 리에게 말했다.
“박정용의 실형 가능성 있습니까?”
김호철과 혜인 리가 마치 스프링 인형처럼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래요? 부족하지 싶었는데?”
“다큐멘터리 보니까 무조건 가능성 있습니다.”
김호철의 단호한 멘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네요. 확실하게 부탁드립니다.”
“예, 실형 받아 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실형을 거의 확실하게만 만들어주세요, 놈들도 변호사를 쓸 테니.”
“예?”
김호철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혜인 리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뭐야? 이 변, 왜 웃어?”
김호철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혜인 리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의뢰인 뜻, 잘 알았습니다.”
“그래요?”
“네, 합의 종용을 바라시는군요.”
확실히 내 의중을 간파한 모양.
“예, 법적 효력이 있는 각서나 서약서를 받았으면 좋겠네요.”
혜인 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영어로 물었다.
“의뢰인이 소지하신 토지와 집 때문인가요?”
벌써 많이 조사한 모양이다. 철저하게 조사해서 내가 뜻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열심히 움직이긴 한 모양.
“맞습니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이해한다니 좋네요.”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녀는 꼭 나와 손을 잡고 싶은 모양이다. 제법 감이 좋은 사람일까. 미친 듯이 똑똑한 투자자도 항상 감 좋은 투자자한테는 밀리는 세상이 이 망할 투자시장이었다.
분석하고 또 분석해도, 도대체 행운과 감을 몰빵한 것 같은 놈들이 나타나 분탕질을 칠 때면 복장이 뒤집어지곤 한다.
그래서 난, 감이 좋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은 이변 생성기나 다름없으니까.
“최선 말고.”
“예?”
“잘하세요. 내가 싫어하는 게 최선이고, 노력이라.”
혜인 리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네! 성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능력은 증명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