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sh My Husband Were Dead - Chapter 36
Only Krnovel
막시밀리안
2023.12.06.
“괜찮나요?”
“하아, 후우.”
속이 울렁거려서 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먹은 게 별로 없어서 그저 더운 공기만 뱉었다.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은 카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코델리아는 나무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몇 번이나 했다.
“물이라도 좀 가져다줄까요?”
“아뇨. 이제 괜찮아요.”
로젠블러가 걱정스러운 낯으로 물었다. 코델리아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데리러 와 줘서 고마웠어요. 안 그랬으면…….”
운이 좋았다.
코델리아는 실금이 가서 반으로 갈라진 반지를 꽉 쥐었다 놓았다.
반지 덕분에 살았다. 막시밀리안이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순간, 어떤 투명한 막이 생기면서 막시밀리안을 튕겨 냈다.
때마침 로젠블러가 그의 연구실을 방문하여 그와 마주쳤다. 코델리아의 안색이 창백히 변한 것을 보고 로젠블러는 서둘러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시간 맞춰서 간 모양이군요. 막시밀리안과 함께 떠났다는 말에 혹시 몰라서 간 거였는데.”
“그자가 자기 제자를 죽였어요. 내 눈앞에서.”
“…….”
로젠블러는 그다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짧은 침묵을 지킨 후 말했다.
“마법사 협회가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아나요?”
“아뇨? 그건 왜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설명해야겠군요. 마법사는 몇몇 선택받은 소수만 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기야 하겠죠. 마력을 느끼지 못하면 애초에 마법사가 될 수 없으니까.”
“아니요. 마법사에게 재능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스승의 존재죠.”
“스승?”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의중을 알 수 없었으나 코델리아는 굳이 로젠블러의 말을 중간에 가로막지 않았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마법은 철저한 도제 방식으로 전승되기 때문에 어느 학파에 속해 있냐, 어느 스승을 모시고 있냐는 절대적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그게 제자를 살해해도 괜찮은 이유인가요?”
“밖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곳에서 스승이란 존재는 그만큼 절대적인 위치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스승이 죽으라고 하면 제자는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왜 레오나드가 자신을 스승으로 모신 게 얼마나 큰 특혜인지 입버릇처럼 얘기했는지 이해가 갔다. 동시에 왜 카론이 스스로 독이 든 음식을 먹었는지도.
“하지만 그는 사람을 죽였어요. 아무도 그 죄를 묻지 않는 건가요?”
“분명 마협 안에서도 법과 질서가 있습니다만, 막시밀리안은 리아논 학파 내에서 입지가 매우 강력한 상급 마법사입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한 명입니다. 아까 보았던 리아논의 세이리우스, 메누피오 님뿐이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당신도 마협에 오래 있다 보면 납득할 겁니다.”
로젠블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말했지만 코델리아는 도무지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 건물에서 도망가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아무리 무서워도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로팰 마협에 있으면서 레오나드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단지 제자로 거두어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뿐은 아니었다.
그녀는 레오나드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녀를 제자로 맞이한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절 스승님의 연구실로 데려다주세요.”
“괜찮겠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어차피 당신이 왔으니 연구실은 폐쇄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조금 쉬었다 가죠.”
“아뇨. 지금 당장 가고 싶어요.”
로젠블러는 몇 번 더 코델리아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녀의 뜻을 꺾지 못했다.
“따라와요.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고맙습니다.”
“고맙긴. 레오의 제자는 내 제자나 마찬가지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요.”
“엘펜바움 님의 제자가 들으면 서운하겠는데요.”
“하하, 괜찮아요. 난 제자가 없으니까.”
“없다고요? 왜요?”
“글쎄요. 아직 제자로 받을 마땅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레오도 나처럼 제자를 들이지 않아서 조금 안심하고 있었는데 몰래 제자를 만들어 놓다니. 조금 배신이네.”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걷다 보니 울렁이던 속이 많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긴 복도를 지나 어느 낡은 문 앞에 도착했다.
코델리아는 그 문을 보자마자 입을 쩍 벌렸다.
“여기에요. 레오의 연구실.”
“와, 엄청 복잡하네요.”
“응?”
“이 문이요. 마력이 십이 중으로 둘러싸여 있네. 아무나 못 들어갈 만하네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급이라고 들었는데.”
“아. 저 마력을 볼 수 있거든요.”
코델리아가 자기 눈가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그러나 마주한 로젠블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볼 수 있다고요? 마력을?”
“네.”
“어떻게요?”
“그냥,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보였어요. 처음엔 그냥 아지랑이나 헛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력이 담긴 물건에서만 보인다는 걸 깨닫고 마력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로젠블러는 아주 길게 신음을 뱉은 후 말했다.
“당신이 마력을 볼 수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왜요?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뇨. 그보다 당신은 레오의 제자라는 것만으로 이미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데 거기다 마력을 볼 줄 안다는 것까지 알려지면…….”
그가 말끝을 흐리며 뒷말을 잇지 않았지만 코델리아는 로젠블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그래서 쉽게 수긍했다.
“네. 알겠어요.”
“당신이 어떻게 레오의 제자가 됐는지 이제 알겠군요. 그런 엄청난 재능이라니. 대마법사 라헬마저 마력을 보지는 못했는데. ……정말 아쉽네요.”
“뭐가요?”
“레오보다 나를 더 빨리 만났더라면 당신을 나의 첫 번째 제자로 받았을 텐데.”
그는 아쉬움을 듬뿍 담은 눈으로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말에 코델리아는 잠시 상상에 빠졌다.
성질 더럽고, 머리는 장식품이냐면서 맨날 구박만 하는 레오나드가 아닌, 이렇게 착하고 잘생기고 상냥한 로젠블러의 제자라니. 상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매일 마법 숙제를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무르고 싶은데 혹시 무르는 방법 아시나요?”
“무르다뇨. 레오가 섭섭해하겠어요.”
코델리아의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로젠블러는 웃어넘겼다.
절대 농담은 아니었지만 무를 방법이 없다는 것을 바론을 통해 들은 터라 코델리아는 한숨을 푹 쉬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일반적인 문과 달리 열쇠 구멍이 문의 한가운데 있었다. 코델리아는 열쇠를 구멍 안에 끼워 넣었다. 그러자 십이 중으로 칭칭 감싸져 있던 마력이 조금씩 흩어지는 게 보였다.
이제 됐나 싶어서 문을 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 한가운데 코델리아의 주먹만 한 눈이 생겼다.
“으아아!”
“뭐야? 넌 뭔데 아틸레이 연구실의 열쇠를 가지고 있어?”
그 눈은 생김새가 너무나 기괴해서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눈도 코델리아를 보고 놀랐는지 눈꺼풀을 빠르게 깜박였다.
“누, 누구세요?”
“누구긴. 백서른두 번째 악마, 칸디아스다. 빌어먹을 아틸레이 놈한테 속아서 문지기나 하는 신세지만. 너야말로 뭔데?”
눈이 말했다. 이렇게 놓고 보니 굉장히 이상한 문장이었지만 그게 상황을 설명하는 적확한 단어였다. 코델리아는 발랑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뒤 말했다.
“전 레오나드 아틸레이 님의 제자예요.”
“제자? 웃기고 있네. 야. 그놈이 제자가 어딨냐? 속일 걸 속여야지.”
“레오의 제자가 맞습니다. 칸디아스 님. 그녀는 아케론의 인장도 가지고 있어요.”
“흐음?”
로젠블러가 그녀의 편에 서서 옹호해 주자 칸디아스가 코델리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손 내밀어 봐.”
“내 손이요?”
“그럼 내 손이겠냐? 난 눈알밖에 없는데?”
코델리아는 맹수에게 손을 내미는 심정으로 주춤주춤 손을 칸디아스에게 내밀었다. 칸디아스의 눈꺼풀 위로 손이 닿자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진짜잖아. 뭐야. 아틸레이 그놈이 제자를 들이다니.”
“확인했으면 이제 문 열어 주세요.”
“열쇠만 있다고 열어 줄 순 없지. ……후후. 내가 낸 수수께끼를 맞혀야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정답! 붉은 꽃!”
칸디아스가 한껏 목소리를 깔고 위엄 가득한 어조로 문제를 내려고 했지만 코델리아가 훨씬 빨랐다.
“야! 아직 문제도 안 냈는데 정답을 말하면 어떡해?”
“어? 정답 아니에요?”
“정답 맞다, 맞아. 어휴, 아틸레이는 어디서 저랑 똑같이 성질 급한 놈을 제자로 데려와서……. 들어와!”
칸디아스가 버럭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드디어 레오나드의 연구실로 들어간다. 코델리아는 괜히 감격에 차서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졌다.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을 겪었던가.
코델리아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문이 쾅 소리와 함께 빠르게 닫혔다.
“앗! 아직 엘펜바움 님은 못 들어왔는데.”
“그 녀석은 여기 못 들어와.”
아까 보았던 칸디아스의 눈알이 허공에 생겨났다.
“이 연구실에 들어올 수 있는 인물은 오직 아틸레이뿐. 아니지. 이제 너까지 있구나.”
“칸디아스 님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그래, 그래. 외눈깔이라고 부르던 것보다는 낫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연구실은 평범한 편이었다. 어지럽게 나뒹구는 책들과 펜과 종이로 지저분한 책상, 그리고 담요가 놓인 소파가 덩그러니 있었다.
코델리아는 찬찬히 그 공간을 훑어보았다. 어쩐지 책상에 앉아 있는 레오나드의 모습이 떠올라서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틸레이가 뭐 가져오라고 시키디?”
“네. 란셀의……. 예? 아, 아닌데요. 스승님은 돌아가셨는데요?”
아무 생각 없이 답하다가 코델리아는 스스로 깜짝 놀라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러자 칸디아스가 코웃음을 쳤다.
“죽어? 그놈이? 잘도 죽었겠다.”
“진짠데. 진짜 돌아가셨어요.”
“그놈이 죽었으면 이 지긋지긋한 계약도 끊어졌어야지! 아주 튼튼한 걸 보니 어디서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게 분명해! 아휴, 징글징글해.”
“저는, 저는 몰라요.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일단 코델리아는 모른 척 시침을 뗐다. 괜히 칸디아스랑 더 말을 섞었다간 정말 들킬 것 같아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저, 란셀의 마지막 꽃이랑 성녀의 눈물이랑 붉은 용의 숨결 어딨는지 아세요?”
“오자마자 제일 비싼 것만 쏙쏙 털어먹네. 잠깐 기다려 봐. 그놈이 여기 어디 두는 걸 봤는데.”
칸디아스가 둥둥 날아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코델리아는 주위를 한번 쓱 돌아본 뒤 소파에 얌전히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엉덩이 부분에 뭔가 걸리적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살펴보니 금으로 장식된 얇고 둥근 형태의 팔찌가 소파 담요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와, 예쁘다.”
가운데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예스러운 무늬가 섬세하게 조각된 팔찌였다. 그것을 한참 만지작거리던 코델리아는 슬쩍 손목에 넣어 봤다. 당연히 잠깐 끼어 봤다가 다시 돌려놓을 생각이었다.
“어? 어? 이거 왜 안 빠지지?”